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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의 삶에 대하여 (feat. 신경성매독) 본문

2012~2017

프리드리히 니체의 삶에 대하여 (feat. 신경성매독)

여름개미 2017. 4. 22. 09:46

32세경 프리드리히 니체

 

리드리히 니체의 삶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에 태어났는데  대략 19세기 중반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기는 콜레라, 결핵 등 감염병이 전세계에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을 앗아갔던 때이다. 그런 시기에 니체가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시기에 니체가 직격타를 맞은 건 니체의 부친이 결핵으로 돌아가면서 부터다. 니체는 부친의 병으로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후 어머니 프란치스카는 니체와 그 동생들을 데리고 여기저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역시 매독으로 인해 사망하였는데 니체가 걸린 매독은 만성적인 수막뇌염으로인한 마비성신경매독(진행성매독)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뇌에 문제가 되어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치매 및 사지마비에까지 다다르는 병이다.  지금이야 페니실린을 이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지만 그 시기에는 매독이라는 병의 치료가 어려웠기 때문에 니체는 병이 악화되는 것을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진행성마비는 잠복기가 평균 15년이라고 하고, 30~40대에 많이 발병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니체의 경우와 맞아떨어진다. 그러데 여기서 짚고 넘어야가야 할 것은 매독은 성병이라 대표적인 감염경로가 성관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20대 늦어도 30대초반에는 누군가와 관계를 했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지만 그게 누군지는 정확히 밝혀지지가 않았다. 니체가 저술에 목을 맨 철학자라 할지라도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나 보다 ..ㅎ 실제로 니체는 코즈마라는 여인에게 얼마 알지도 못하면서 청혼을 하였다가 거절당하기도 했을만큼 수컷(?)의 면모도 있었다.

병이 진행됨에 따라 니체는 정신병원에 가게 될 정도로 심각해졌고 니체의 삶은 비참해져 갔다. 일례로 한때 교수였던 니체가 현재는 남들의 보호와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걸까, 예나 정신병원에 있을 때 혼자 '프리드리히 니체 교수'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거나 같은 병원의 환자 손을 흔들며 하는 말이 "니체 교수......"였다고 한다.

 

 저명한 철학자답게 니체는 내면으로의 집중을 즐겼고 고독을 즐겼다. 니체의 삶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삶 절반을 여행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니체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니체는 여행을 통해 활력을 얻지는 못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 그의 여행은 오로지 저술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야 시대를 꿰뚫는 깨달음이 오는 걸까? 그는 일명 여행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니체는 점차 악화되는 자신의 건강이 좋아지기를 절실하게 바랐는데 그가 여행을 다니는 것도 그의 예민한 몸상태에 맞추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바람의 목적은 결국 저술활동이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그를 고독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주변에는 진정한 친구와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자주 썼는데 어느날 니체의 편지를 받은 친구 오버베크는 니체의 상태가 안좋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직접 니체를 찾아가기도 한다. 니체의 편지에는 직접적으로 그의 상태가 보여지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또한 니체의 어머니 프란치스카는 니체가 어렸을때부터 혼자(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그를 돌보았는데 우선 그것부터 그녀의 희생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니체가 말년에 치매기가 있을 무렵에도 프란치스카는 마치 니체가 아이였던 과거로 돌아간듯 니체를 돌보았다. 프란치스카가 니체를 돌보고 얼마안되어 프란치스카는 사망하였는데 그 뒤를 이어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돌보게 된다. 이처럼 니체가 거의 사람구실을 하지 못할 만큼 나약해져 있을 때도 항상 그를 돌보아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니체는 한편으로는 복받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좋은 유럽인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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